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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고 문자

김건우_Jonathan 2023. 4. 17. 05:52

하루가 멀다하고 부고 문자가 날아온다.
가야 하나?
인천 서울 서울 서울 대구 충주
결혼식에는 안가도 장례식에는 가라는 말이 있다.
동창, 스승님, 교회, 직장에서 만난 이들의 부모님 장례다.

부고 소식이 왔는데, 정확히 누구인지도 모르는데 갔다가 깜짝 놀란적도 있다.
꽤 오래 전인데, 어머니가 전화를 받았는데, 누가 돌아가셨다고 연락이 왔는데, 갈 수 있냐고 하셨다.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갔다가 정말 놀랐다.
내가 어렸을 때 매년 세배를 드렸던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것이었다. 아버지의 삼촌이다.
친할아버지는 황해도 재령분이라 뵌적이 없고, 나에게는 친할아버지 같은 분이다.
집에 황급히 전화했다.
다음 날 모든 가족이 다시 왔고, 장지에 가는 날 내가 영정사진를 들고 장지로 향했다.

올해 1월1일 나는 아들과 그 할어버지의 아들에게 찾아가 세배를 드렸다. 아저씨가 떡국을 먹다가 친할아버지가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아냐고 질문했다.
몰라요.
예전에 이북에서 넘어온 사람한테 들은 얘길 해주셨다.

너희 할아버지가 재령에서 장로교 장로님이었는데,
삼일운동 바로 전에 사람들 모여서 태극기를 만들고 있었어.
한 아이가 방에 들어오더니 태극기를 하나 들고 나가 마을을 뛰어 다녔지.
그 모습을 본 순사가 손에 들고 있는 게 어디서 난 것인지 물어서, 결국 할아버지가 투옥 되셨어.
주동자로 몰리게 됐고, 결국 옥사하셨다.
나중에 김일성이가 독립유공자로 표창했다고 한다.
진위 검증은 안되나 이름만 알고 있는 분에 대한 가장 구체적인 이야기였다.

하지만, 내가 기억하는 것이 하나 있다.
어릴 적 세배 갔을 때,
할아버지가 내게 했던 그말.
건우야, "무슨 일을 하던지 어떻게 하면 좀 더 잘할 수 있는지 생각하면서 해야 더 잘 할 수 있게 된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대학교수를 하셨던 분들이다.
이유는 잘 모르지만 장지로 출발할 때 그분들 영정사진은 나한테 맡겨졌고 내가 제일 앞에서 걸어 갔다.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함께 일본에서 공부한 가까운 사이였고, 내 기억에 아버지는 틈만나면 선물을 사들고 삼촌댁에 갔었다. 그래서 그 집에서 아버지를 최고로 여겼다. 마치 그 집의 큰 아들처럼 생각했던 것 같다.

아버지의 형제는 11명인데, 그 중 세
명이 남한에 넘어왔다. 그러나, 세 분 모두 돌아가셨다. 남은 것은 그 자식들이다. 친족인데, 성경에 자기 친족을 돌보지 않는 자는 불신자보다 악하다고 나온다.

사람 노릇하기 쉽지 않다.
인사 다니고, 연락하는 것도 큰 마음을 먹어야 한다.
하지만 사람은 사람의 도리를 하고 사는 것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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